아이의 미국 중학교
생활 어떨까?
처음 미국에 와서 아이가 학교에 다니면서 낯설어했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하지만 아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학교 생활에 적응하였고 지금은 익숙해져서 일과가 지루하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했다.
사실 미국 올 때도 사람들이 어른이 문제지 아이들은 금방 적응한다는 말을 많이 했었다. 그때는 아무리 그래도 아이가 힘들지 어른이 힘들겠냐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생활하며 내가 내린 결론은 진짜 아이들은 적응력이 빠르다는 것이다. 현재 생활의 문제가 있는 건 아이가 아니라 진짜 나인 걸 새삼 느낀다.
요즘은 어디를 가도 아이랑 같이 가면 마음이 놓인다. 아이가 내가 묻고 싶은 걸 대신 물어주고 알아봐 준다. 처음 떨리며 질문하던 아이의 모습은 사라지고 자신감에 넘쳐 점원에게 내가 필요한 걸 대신 설명해 주고 찾아주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도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지만 점점 성장해 가는 아이를 지켜보며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남은 시간 더 잘 지내보자고 오늘도 다짐한다.
잘하고 있어!
6 grade(중학교 1학년)를 다니는 아이는 미국에 오고 얼마 후 레벨 테스트를 쳤었다. 여기 학교는 같은 6 grade라도 학업 수준에 따라 두 반으로 나뉘고 과목마다 레벨이 또 나뉘는 구조이다. 그래서 레벨 테스트를 통해 과목 수준을 아이에게 맞춰준다. 테스트는 speaking, writing, listening, reading 4가지 파트를 친다. 한국 아이들은 문법 위주의 공부하는 터라 writing, reading에 강하고 speaking과 listening에 취약한 편이다.
그래서 아이는 테스트 전에 많이 긴장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결과 나온 걸 보니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점수가 잘 나와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아마 한국에서 영어학원을 다니면서 문법을 힘들게 한 덕인 것 같았다. 반 배정 레벨 테스트 결과 발표가 있는 날, 아이는 나에게 자신이 잘해 나가고 있는 것 같다고 칭찬받고 싶다고 말을 걸어왔다.
"엄마, 나 칭찬받고 싶어. 내가 이렇게 적응 잘할지는 몰랐어. 난 말도 못 하고 집에서 맨날 울고 그럴 줄 알았는데 학교에서 얘기가 막 다 들려. 신기해!! 1년 지나면 웬만한 건 다 들리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오늘은 레벨테스트 결과 esl 반 등급이 업그레이드돼서 수업 시간표가 변경됐어.
그래서 지금 수업 중인 아트클럽에서 밴드로 수업을 옮겨주셨어. 아트수업 중에 밴드 교실에 이동했었거든. 밴드 선생님께서 내가 와서 기쁘고 내일부터 플루트 연습을 해보자고 하셨어. 근데 내가 집에 가서 연습하고 싶다고 악보 책도 빌려달라고 해서 가져왔어. 왜냐하면 난 연습이 너무 하고 싶어서 그랬어. 이 정도면 나 잘하고 있는 거지?"
아이 얘기를 듣다 보니 정말 아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해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다행스러웠다. 그리고 학교를 잘 다녀준 것에 대해 칭찬을 많이 해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로 아이가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솔직하게 얘기해 주어서 그게 나는 너무 감사했다.
Can l go to restroom?
하교 후 간식을 먹으면서 아이는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었다. 처음으로 오늘 홀웨이 패스를 쓰고 화장실을 갔다 왔다고 자랑했다. 미국 학교는 쉬는 시간이 짧아서 화장실을 다녀올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래서 수업 중에 화장실을 가고 싶으면 홀웨이패스권을 선생님께 받아야 교실을 나갈 수 있다. 화장실을 가고 싶으면 용기 있게 수업 중에 손을 들고 자신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
"엄마, 오늘 진짜 갑자기 수업 시간 중에 화장실을 가고 싶은 거야. 웬만하면 쉬는 시간에 가보려고 노력하는 데 수업 중에 말하는 것 좀 그렇거든. 그런데 오늘은 진짜 갑자기 화장실을 가고 싶어서 내가 손을 딱 들고 한국에서 배운 영어로 Can l go to restroom?이라고 했어.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홀웨이 패스를 목에 걸어주셨고 난 용감히 다녀왔지.
화장실에 다녀오니 옆에 짝꿍이 엄지를 치켜들며 Good!! 이라고 말해주었어. 그때 기분이 너무 좋았어. 엄마가 볼 땐 대단한 일이 아닌 것 같지만 나에게 엄청 대단한 사건이었어. 나 진짜 오늘 기분 좋아. 그리고 이제 수업 중에 화장실 잘 갈 수 있어. 대단하지."
아이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수업 중에 화장실을 간다는 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싶었다. 근데 생각해 보니 미국 학교에서 수업 중에 흐름을 깨고 손들고 화장실 간다고 말하는 게 어려운 일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조차도 아마 그냥 화장실 안 가고 참다가 마치면 갔을 것 같다. 수업 중에 손을 들 용기가 안 났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아이를 다시 보니 갑자기 아이가 대단해 보였다.
눈송이 댄스 행사
학교에서 공식 행사인 눈송이 댄스 행사가 저녁에 있다는 알림장이 왔다. 아이가 가기를 원하면 보내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안내 사항에 보니 학교 공식 행사라 참석할 아이들은 준정장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우리 아이는 치마 입는 걸 정말 싫어한다. 치마 대목에서 아이가 행사에 가지 않을 것이라는 걸 미리 짐작할 수 있었다. 안내장에는 행사에 참여할 학부모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음료나 쿠키 등을 기부하라는 내용도 같이 기재돼 있었다. 내심 기대를 하며 아이에게 댄스 행사에 갈 건지 저녁에 물어보았다.
"엄마, 나 눈송이 댄스 행사에 안 갈 거야. 안 그래도 선생님께서 행사에 갈 학생에게 옷을 빌려주신다고 말씀하셨어. 선생님이 나에게 그날 입을 치마를 보여 주는 순간 안 가기로 마음먹었어. 난 정말 치마가 싫어. 치마를 입고 저녁에 두 시간이나 있을 생각을 하니 벌써 싫어. 물론 엄마는 학교 행사라 경험상 가보라 하겠지만 치마는 절대 양보할 수 없어서 안 되겠어. 미안해. 나의 취향을 존중해 주었으면 좋겠어."
부모 된 입장에선 학교 공식 행사이고 10달러만 내면 음료와 쿠키 등을 먹으면서 댄스도 구경하고 즐길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 참여하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치마 입기를 싫어하는 우리 아이는 눈송이 댄스 행사에 가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사실 나는 아이가 간다면 학부모 자원봉사도 신청해서 아이와 행사를 같이 즐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 줘야 하기에 아쉽지만 마음을 접었다.
밴드가 너무 재밌어!
레벨 테스트 결과 후 수업 시간표가 조정되면서 아이가 밴드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올 때부터 밴드가 하고 싶어 플루트를 몇 달 배워왔었다. 아이가 기본적인 연주가 가능하다 보니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을 바로 습득할 수 있어 재미가 드는 모양이었다.
미국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밴드를 할 수 있어서 정말 긴 시간 동안 한 악기를 연주할 기회가 주어진다. 난 이런 점이 미국 교육 시스템의 좋은 점 중 하나인 것 같다. 매일 학교에서 나의 악기를 한 시간씩 수업한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활동하면 그 아이는 평생 하나의 악기를 자유자재로 연주하고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엄마, 요즘 밴드가 너무 재밌어. 학교생활이 매일 똑같아서 아주 지루했어. 하지만 밴드 때문에 너무 신나. 내가 플루트를 좀 잘하는 거 같아. 한국에서 속성으로 2달 배워온 건 잘한 거 같아. 집에서 연습하려고 플루트를 매일 가지고 다니는 내가 너무 좋아.
나중에 밴드 연주회도 연다고 하더라. 사람들 앞에서 연주회를 한다는 게 멋지고 기대가 돼서 더 열심히 하고 싶어지는 것 같아. 미국에 와서 가장 좋은 점이 플루트를 매일 배운다는 거야. 나는 이제 살면서 플루트라는 악기 친구가 생긴 것 같아 너무 좋아. 그래서 학교생활이 조금 더 좋아지고 있어."
아이가 집에 와서 플루트를 연습할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자신감이 묻어나는 걸 볼 수 있다. 음악은 언어와 상관없이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어서 너무 좋은 매개체인 것 같다. 더불어 자신감도 불어넣어 주고 심적 안정도 주는 것 같아 미국 학교생활의 좋은 점 중의 하나인 것 같다.
미국 친구 사귀기
아이는 미국 친구 한 명 사귀기가 위시리스트 중 하나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 친구랑 친해지려고 노력 중이라고 했다. 미국 친구들은 먼저 잘 다가온다고 한다. 어느 날 아이가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먹고 있는 데 같은 스쿨버스를 타는 남자아이가 다가와 자신이 가져온 스낵을 먹어보라고 권유했다. 아이의 입맛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 고맙지만 거절했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래도 아이는 그때 내심 기분이 좋았다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다음 날 아이도 킨더조이랑 껌을 친구들에게 나눠줬는데 의외로 껌이 완전 인기 대박이었다고 했다. 모두 me, me를 자신에게 외쳤다고 이렇게 껌을 좋아하는 줄 몰랐다고 놀라워했다. 아이에게 먼저 다가왔던 친구는 같은 스쿨버스를 타는 맥테이라는 아이인 데 아무에게나 말을 잘 거는 활달한 스타일이다.
맥테이에게도 주니 자신의 껌을 좋아해서 그날 기분이 엄청 좋았다고 했다. 나름 조금은 가까워졌는지 오늘 하교할 때 스쿨버스를 타는 가는 길이 여러 개 있는 데 맥테이가 지름길을 알려 줘서 같이 빨리 스쿨버스를 타러 갈 수 있었다고 한다. 뭔가 처음으로 미국인 친구랑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고 자랑했다.
Flu가 학교를 덮치다.
여느 날처럼 스쿨버스에 내려서 걸어오는 아이를 마중 나갔었다. 그런데 왠지 아이 얼굴이 지쳐 보였다. 나를 보자마자 첫마디가 “엄마, 추워.” 우리 아이는 한 겨울에도 너무 덥다고 하는 아이라 그날따라 이상하긴 했다. 집에 오자마자 아이는 피곤한지 침대에 쓰러져 잠들었다. 그때만 해도 가방이 무거워 힘들어 자나 보다 생각했다.
한 시간이 지나도 아이가 일어나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머리를 짚어보니 열이 펄펄 끓었다. 온도계로 열을 재보니 40도였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다행히 온도계와 함께 스틱형 해열제를 챙겨 왔었다. 일단 해열제를 찾아 먹이고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 주었다. 아이가 자라고 이렇게 고열이 나는 건 처음이었다.
며칠 전 튜터 선생님이 아이 중학교에 Flu가 돈다고 말씀하신 게 생각이 났다. 그때는 그냥 넘겼었는데 아이도 Flu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가야 했다. 그런데 미국은 병원 예약을 해야 갈 수 있었다. 저녁 시간이라 문을 닫아 응급실을 가든 해열제를 먹이든 방법이 두 가지밖에 없었다. 지인에게 전화해 알아보니 미국 응급실은 각종 검사에 아이가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해열제로 열을 떨어뜨리고 아침에 병원 예약을 하고 가는 것이 나을 거라고 했다.
우리도 고민하다 현지에서 아이를 키우는 지인의 말을 듣고 이 밤을 버텨보기로 했다. 밤새 열이 그렇게 나더니 한국에서 가져온 해열제가 잘 들어서인지 아침엔 열이 다 내려갔다. 그래서 우린 하루를 더 지켜보고 열이 다시 심하게 오르면 병원에 가기로 했다. 아이는 그 후로 좀 힘들어했지만 고열에서 벗어나서 병원에 가지 않고 다행히 자연치유가 되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한 교실에 5명 정도의 아이가 학교를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다들 Flu여서 3~4일 결석 중이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다행히 우리 아이는 잘 넘어갔지만 주위에 많은 아이들이 Flu로 고생했다고 한다. 열이 다 내리고 정신이 들었을 때 아이가 조용히 말했다.
"엄마, 나 이제 생각해 보니 2일 전부터 코에서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거야. 지금 생각해 보니 열이 나서 그런가 봐. 나 참 바보 같다. 그렇지? 그럼 열난 지 3일 정도 된 거 같아. 사실 오늘 스쿨버스 같이 타는 친구가 아침부터 아프다고 조퇴해서 집에 갔었다. 나도 몸이 점심시간부터는 서 있기 힘들 정도로 아팠는데 미련하게 그냥 버텼어. 한국에서처럼 수업은 다 마쳐야 되는 줄 알았거든. 다음부터는 그 친구처럼 아프면 말하고 엄마한테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해야겠다. 나 진짜 이번엔 온몸이 쑤시고 춥고 그랬어."
이 말을 듣는 데 사실 너무 미안하고 속상했다. 매일 아이를 챙기고 있던 나로선 3일 전부터 아팠던 아이의 작은 신호를 놓쳤다는 게 미안했고, 학교에서 아플 때나 급한 상황일 때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집에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하면 된다고 알려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 내성적인 성격에 미국 선생님께 집에 가겠다고 말하는 게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아이도 이번 일로 다음부터는 아프거나 다른 특별한 상황이 생기면 집에 와도 된다고 알게 되어서 어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유로운 친구들
한국에서는 수업 시간에 조금은 엄격한 편이다. 하지만 미국은 수업 시간마저 자유롭다고 한다. 수업에 큰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수업 중에 껌을 씹거나 사탕을 먹는 것을 허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의 눈에 비친 미국 선생님들은 교권이 낮아 보인다며 한국이랑 선생님의 입지가 많이 다르다고 말해주었다.
"엄마, 나 처음 왔을 때 수업 들어가서 놀랬잖아.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껌도 씹고 사탕도 먹고 그러더라.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야. 심지어 과자를 먹는 아이도 있어. 그래도 진짜 엄한 선생님은 사탕까지는 이해해 주고 껌은 허락하지 않긴 해. 그리고 여기 선생님들 너무 불쌍해. 아닌가 대단하신 건가?
여하튼 아이들 장난 아니야. 정말 심하게 떠들고 과자 먹고 하는 얘들이 가끔 있는 데 그걸 혼내지 않으시고 주의를 주고 다시 수업을 시작하셔. 사실 나도 친구가 사탕 먹어보라고 해서 수업시간에 한 번 먹어보긴 했는데 정말 떨리더라. 한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 여긴 교권이 한국보다 내가 볼 땐 낮은 거 같아."
현재는 한국도 교권이 많이 낮아지긴 했지만 아무래도 한국은 전통적으로 여전히 선생님이 높은 존재이다. 그래서 조금은 엄격하시고 거리감이 좀 있으신 편이다. 반면 미국은 선생님과 아이들이 수평적 친구 관계인 듯 느껴질 때가 많다. 아이는 여기 선생님들을 친구 같은 데 우리에게 지식을 잘 알려주는 친절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수평적 관계 속에서 지식을 전달해 주는 사람. 나도 아이의 말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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