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 이유가 있었어
졸업을 앞두고 유치원 선생님께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아이가 자주 혼자 소파에 앉아 있어요.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아요. 초등학교에 가면 신경 쓰셔야 할 거 같아요." 순간 머리가 띵했다. 매일 유치원 차를 타고 웃으며 유치원에 갔고 늦은 시간에 데리러 가도 오늘 하루 잘 지냈다고 대답했었는데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전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이에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초등학교 1학년 내내 마음이 쓰였다. 우리 아이가 사회성이 부족한가? 친구 없이 지내면 어쩌지?라는 여러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항상 맴돌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어느 날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가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아이가 갑자기 유치원 때 일을 꺼낸다.
“그때 말이야.. 친구가 민이랑 정이랑 밖에 없었잖아. 그 아이들은 다 일찍 집에 갔잖아. 난 엄마가 일해서 유치원에 늦게까지 있어야 했어. 오후엔 항상 난 혼자였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소파에 혼자 앉아 있는 거밖에 없었어. 그런데 선생님은 자꾸 누구랑 놀라고 계속 말씀하시는 거야. 그때 그 상황이 싫었어.
그리고 난 그때 말할 용기도 없었을 때란 말이야. 그래서 커튼 뒤에 숨어 있고 그랬어. 혼자 있고 싶기도 하고 다가가는 법도 몰랐어. 엄마! 근데 나 이제는 친구들한테 먼저 같이 놀자고 얘기한다. 나 많이 용기가 생기고 잘 자라고 있는 거지?"
불 꺼진 방에서 아이에게서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쭈르륵 흘렀다. 뭐랄까? 감동의 눈물인 듯했다. 그때 난 깨달았다. 아이에게도 다 이유가 있구나. 어른들이 미리 판단하고 걱정한 거였구나.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잘 자라고 있을지 모른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정한 속도가 아닌 자신만의 속도로 자라고 있다는 걸 잊지 말자.
♡ 우리 리치니깐 괜찮아
우리 집에서 키우던 햄스터가 죽었다. 학교 탐구실험에서 대량으로 구입해 분양한 햄스터였다. 엄마 젖을 떼지 못하고 학교 아이들에게 온 햄스터였다. 이름은 리치라고 지었다. 리치는 체구가 아주 작고 귀여운 친구였다. 리치가 오고 집에 활기가 돌았다.
집에 온 지 두 달이 되었을 때 리치가 힘이 없이 누워 있었다. 너무 놀라 급하게 동물병원을 알아봤다. 그런데 햄스터를 치료해 주는 동물병원은 없었다. 수소문해 진료를 해주겠다는 동물병원을 찾아갔다. 그런데 이미 녹내장이 진행되었고 헤어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해주었다. 아이에게는 차마 말 못 하고 약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데리고 와서 정성껏 돌봐주었다. 아이는 리치를 잘 돌봐주면 다시 건강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병원에 다녀온 이틀 후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주려고 하는데 누워서 딱딱하게 죽어 있는 리치를 보고 아이가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뛰어가 보니 리치가 눈이 튀어나온 채 죽어 있었다. 의사의 설명대로 녹내장이 심해져서 뇌까지 간 염증으로 생명을 다한 것이다. 리치가 죽기 전 눈이 튀어나오고 아픈 모습이라 어른인 나조차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괜찮다고 했다. "우리 리치니깐 괜찮아. 다른 햄스터가 아니라." 난 또 머리가 띵했다. 아이지만 내가 배울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저럴 수 있을까? 어른이지만 반성했다. 마음이 따뜻한 아이로 자라고 있어 감사했다.
아이는 한참 울다가 아이클레이로 무언가를 만들었다. 비석이었다. 산에 리치를 묻어주고 비석을 집에 두고 우리가 기억해줘야 한다고 했다. 코코라는 영화를 보고 죽은 이를 기억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도 그 아이클레이 비석을 보며 우리는 리치를 기억한다. 지금은 두부라는 건강하고 예쁜 햄스터가 입양되어 옆에서 쳇바퀴를 힘차게 돌리고 있다.
♡ 코로나가 알려준 사실
우리 부부가 맞벌이를 하다 보니 유치원 때는 야간 돌봄에서 내가 퇴근할 때까지 있어야 했고, 초등학교 들어가서는 방과 후 돌봄을 했다. 방학 때는 아침 일찍 내가 출근할 때 같이 학교에 등교했다. 한 번은 돌봄교실에 데려다주러 가면 너무 이른 시간이라 선생님이 아직 오지 않은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래도 아이는 아무 말 없이 돌봄을 가주었다. 그때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돌봄을 다녀서 당연히 가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줄 알았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다.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학교를 3달간 가지 않고 온라인 수업하게 되었다. 집에서 컴퓨터로 수업한다지만 그냥 지루한 나날이었다. 그렇게 지내다 코로나가 조금 잦아들면서 다시 등교가 가능해진 날 저녁이었다. 아이가 슬며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엄마, 나 진짜 어릴 때부터 돌봄에 다녔잖아. 유치원에는 야간에 있었고 초등학교는 돌봄 교실에 항상 있었잖아. 난 그런 생각을 했었어. 1주일이라도 돌봄에 가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뒹굴뒹굴하면서 엄마랑 쉬고 싶은 게 내 소원이었어. 그런데 코로나로 학교에 오래 못 가니깐 다시 학교가 너무 가고 싶은 거야.
그래서 코로나가 몹시 나쁜 것만은 아닌 거 같아. 내가 학교에서 돌봄 다니는 게 좋은 점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어. 돌봄 가면 심심하지 않아.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고 선생님하고 공부도 하고 말이야. 그러니깐 코로나가 좋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난 돌봄 가는 내가 괜찮아졌어."
사실 난 아이가 말없이 돌봄을 잘 다녀주어서 괜찮은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의 작은 마음속에 돌봄 가는 게 힘들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코로나로 아이가 돌봄의 좋은 점을 알게 되어 고마웠다. 코로나를 계기로 무엇보다 아이의 마음을 알게 되어서도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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