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친구
검둥이
둥이의 탄생
어린 시절 시골에 살았을 때 우리 집엔 항상 개를 키웠었다. 많은 새끼 강아지들 중 유독 태어날 때부터 눈만 빼고 온몸이 까만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우리 가족은 그 까만 강아지를 ‘둥이’라고 불렀다. 둥이는 참 똑똑하고 충성심이 대단한 개였다. 그런 둥이는 우리에게 조금 특별한 개였다. 둥이는 강아지를 아주 많이 낳았었다. 예쁘고 튼튼한 강아지를 낳아서 다른 집에 돈을 받고 분양도 주어서 우리 집에 경제적으로 도움도 준 고마운 개였다. 엄마는 그런 둥이를 엄청나게 예뻐했다. 자식들보다 더 둥이를 살뜰히 챙기셨다. 아빠랑 싸우신 날도 둥이 밥은 꼭 챙겨주셨다.
망부석 둥이
둥이는 유독 엄마를 잘 따랐다. 시골이라 장을 보려면 버스를 타고 한참을 나가야 장터에 갈 수 있었다. 엄마가 버스를 타고 장터에 가는 날이면 둥이는 몇 킬로나 되는 버스 길을 한참이나 따라갔다. 더 이상 따라갈 수 없는 길이 나오면 우두커니 앉아 버스를 바라보고 서 있는 게 다반사였다. 그리곤 집으로 돌아와 대문 앞에 쭈그리고 엎드려 있었다. 지나가는 버스가 설 때마다 엄마가 내리는지 보고 다시 엎드려 기다리길 반복했다. 엄마가 오면 둥이는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맞이했다. 엄마는 그런 둥이를 엄청나게 좋아했다.
새끼 찾아 돌아온 둥이
둥이가 새끼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날의 일이었다. 부모님은 밭에 일 나가시고 우리는 학교에 가고 없었다. 내가 학교에 갔다 와서 새끼를 보려고 개집을 봤는데 새끼는 한 마리도 없고 둥이만 집에 덩그런히 앉아 있는 것이었다. 난 어리둥절해서 엄마를 불렀다. “엄마, 이상해. 새끼가 하나도 없어. 다 사라졌어. 둥이만 있어.” 엄마가 부리나케 밭에서 오셨다. 시골에는 개장수가 자주 돌아다닌다. 돌아다니는 개를 잡아다가 개고깃집에 팔곤 한다. 혹시나 우리 새끼들이 개장수에게 잡혀간 건 아닐까? 그런데 새끼를 개고깃집에 팔기에는 너무 몸집이 작아서 가능성이 희박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엄마가 갑자기 둥이를 빗자루로 때리며 야단을 쳤다. “둥아, 새끼 어떻게 했어? 혼자 집에 오면 어떻게 해. 얼른 가서 새끼 데리고 와. 안 데리고 오면 집에 못 들어올 줄 알아.” 엄마에게 흠칫 두들겨 맞은 둥이는 집을 나가버렸다. 난 그렇게 나가버린 둥이가 걱정되어 대문 앞에서 둥이를 한없이 기다렸다. 해가 밝을 때 나갔는데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둥이가 보이지 않아 걱정되었다. 그런데 저 멀리서 검은 개랑 새끼들이 오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너무 반가워 맨발로 둥이에게 뛰어갔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둥이가 새끼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거다. 엄마는 둥이를 꽉 앉아 주며 말했다. “둥아, 그래야지. 새끼 놔두고 다니면 안 되지. 잘 데리고 왔다. 밥 먹자.” 엄마는 둥이에게 쇠고기 국밥을 한 그릇 주었다. 둥이는 밥을 한 그릇 뚝딱 먹고는 새끼에게 젖을 물렸다. 다시 평화로운 우리 집이 되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난 둥이의 행동이 참 신기했다. 마치 엄마의 말을 알아듣는 듯했다.
둥이와의 이별
중학교 무렵 엄마가 크게 아프셨다. 도시에 나와서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무뚝뚝하던 아빠도 인생의 큰 결심을 하셨던 때이다. 엄마가 수술받고도 계속 병원에 다녀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시골 땅을 팔아서 도시로 이사를 나오기로 했다. 우리는 당연히 둥이와 같이 이사 가는 줄 알았다. 가족들이 둥이랑 헤어지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도시의 이사 갈 집에 마당이 없어서 둥이를 데리고 갈 수가 없었다. 난 너무 슬펐다. 둥이를 데리고 갈 수가 없다니. 왜 아빠는 그런 집을 얻은 건지. 아빠가 미웠다. 하지만 엄마가 아프시니 가야 했다. 그래서 가족들이 생각한 방법이 삼촌 집에 둥이를 맡기고 가는 거였다. 둥이도 우리랑 헤어지는 걸 아는 듯했다. 이사하는 날 우리 차를 계속 따라오던 둥이를 잊을 수 없다. 그 뒤로도 시골로 내려갈 때 둥이를 자주 만나곤 했다. 하지만 우리는 도시 생활에 적응하였고 시간이 점점 흘러 둥이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나중에 들었다. 둥이 소식을 듣고 한동안은 지나가는 개를 보는 것도 편치 않았다. 우리가 이사 안 나왔으면 둥이가 더 오래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한동안 맴돌아서 힘들었다. 같이 있을 때 좋았던 기억, 헤어질 때 슬펐던 기억, 다시 만났을 때 기쁜 기억, 영원한 이별했을 때의 기억을 우리에게 남기고 간 둥이. 우리가 둥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은 둥이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치유하는 동물 친구
요즘처럼 사건·사고가 많은 각박한 세상에 살다 보니 사람이 동물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래서 현대인들이 상처 주고 배신하는 사람들 대신 반려동물을 기르면서 교감하고 안정을 느끼는 게 아닐까 한다. 우리가 둥이를 통해 위로를 받았듯이 사람들도 반려동물을 통해 상처받은 자신들을 치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둥이가 생각나 추억을 잠시 더듬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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