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평생 친구가 될
빨강 머리 앤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경주 황리단길에 여행을 갔다 어서어서라는 서점에서 아빠가 아이에게 갖고 싶은 책을 고르라고 했을 때 아이가 고른 책이다. '빨강 머리 앤' 정말 유명한 책이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각종 매체를 통해 드라마나 영화, 만화로 제작되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아이는 표지가 너무 예쁘다며 소장하고 싶다고 해서 집으로 데려왔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아침에 아이를 깨우고 책을 읽어주고 있다. 일명 깨움책이다. 아침에 커튼을 걷고 햇살이 들어오면 아이는 뒤척인다. 내가 책을 읽어주면 어느새 일어나 책소리를 듣고 있다. 난 작은 소제목 한 쳅터만 읽어주고 아침을 하러 부엌으로 간다. 아이는 책 내용이 궁금했는지 혼자 책을 읽곤 한다. 빨강 머리 앤을 만화로도 보고 영화로도 보았지만 책으로 읽어주니 더 흥미로운 것 같았다.
고아인 빨강 머리 앤이 초록 지붕에 살게 되면서 무미건조한 삶을 살고 있었던 무뚝뚝한 마릴라와 매슈가 매사 긍정적이고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앤의 매력에 흠뻑 빠져가는 모습을 보며 사람이 사람을 얼마나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 사람이 사람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줘서 너무 좋았다.
매슈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앤은 즐겁게 생활하는 자신이 매슈를 배신한 것 같이 느껴진다고 하는 대목이 생각난다. 매슈가 정말 그리우면서도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즐겁게 느껴져서 웃고 있는 앤의 고민에 대해 앨런 부인이 해답을 준다. "매슈가 살아있을 때 그분은 네가 웃는 걸 좋아했고 또 네가 주변의 즐거운 것들에서 기쁨을 찾아내길 바라셨잖아. 매슈는 떠났지만 네가 여전히 그렇게 지내길 원하실 거야." 인간은 언제나 죽고 남은 사람들은 또 살아가야 한다. 앨런 부인의 이 말이 인생의 마지막 길을 떠나는 가족이 남은 가족들에게 바라는 마음일 거라 생각된다.
앤은 매슈가 죽고 혼자 남을 마릴라를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초록 지붕 집에 남아 좋은 선생님이 되기로 한다. 마릴라는 자신을 위해 앤이 꿈을 포기하고 희생한다고 생각했지만 앤은 명랑하게 대답한다.
“전 어느 때보다 야심 차요. 다만 꿈의 방향을 조금 틀었을 뿐이에요. 좋은 선생님이 될거에요.....(이하생략)......퀸스를 졸업했을 때 제 미래가 곧은 길처럼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 같았어요.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수많은 이정표를 보게 될거라 생각했어요. 지금 전 길모퉁이에 서 있는 거예요.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전 믿을 거예요. 아주 멋진 일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요. 길모퉁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혹적이잖아요."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예기치 못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럴 때 우리도 앤처럼 길모퉁이에 서 있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다만 꿈의 방향을 조금 틀었을 뿐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인생의 무게가 조금은 더 가벼워질 거라 생각한다.
빨강 머리 앤은 어른인 내가 읽어도 긍정적이고 밝은 빛을 주는 책인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아이의 필독서로 추천하고 싶다. 만화나 영화로 접해도 좋지만 책을 읽으며 밝고 긍정적 에너지를 가진 앤의 모습을 상상하는 재미를 다들 느껴보면 좋겠다.
책을 읽고 있으면 앤이 옆에 와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한 번 책을 읽기 시작하면 앤의 매력에 빠져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에 가 있을 것이다. 아이도 빨강 머리 앤의 매력에 흠뻑 빠져 한동안 앤의 얘기로 가득 채운 날을 보냈었다. 아이는 책을 읽고 꼭 첫 페이지에 책의 주인공에게 편지나 소감을 짤막하게 적어 오고 있다. 난 아이의 짧은 편지에 담긴 마음이 너무나 이쁘고 사랑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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