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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지금 행복하자)

생활일기# 연극을 마치고

by new인생살기♡ 2023. 11. 2.

 
 

꽃다발과 노란 응원봉, 칭찬

 

오늘은 아이가 한 달 반동안 열심히 연습한 학급 연극 발표날이다. 회사에서 조퇴를 하고 바쁘게 집으로 왔다. 시작 시간은 6시. 우리가 학교에 도착한 시간은 6시 10분. 교문을 들어서는데 운동장에 개미 한 마리 없이 조용했다. 뭔가 쐐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가 6시까지 오면 된다고 해서 우린 10분 늦어도 괜찮을 거라고 하는 마음으로 강당으로 들어갔다.
 
강당에 들어선 순간 아이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다른 학부모들이 일찍 와서 미리 자리를 잡아서 앉을 의자는 거의 만석이었다. 무대가 잘 보이는 앞쪽 자리는 남아 있지 않고 뒤쪽 끝자리만이 몇 개 남아 있었다. 일단 의자에 가방을 놓고 두리번 아이를 찾았다.

다행히 마지막 줄 끝자리에 앉아 있어 살며시 가서 어깨를 툭 치면서 내가 왔다는 걸 알렸다. 나를 보자마자 노란색 응원봉 하나를 건넸다. 그런데 아이 얼굴이 밝지 않았다. 평소의 아이라면 활짝 웃으며 반겼을 건데 얼굴 표정이 어두웠다. 약간 이상함을 느꼈지만 별일아니겠지라고 생각하고 난 나의 자리로 돌아갔다.

드디어 연극이 시작되었고 한 반씩 연극 공연이 진행되면서 아이들이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 아이도 열심히 연극을 준비했을 생각을 하니 대견한 생각도 들었다. 무대 앞에 앉아 있는 아이를 보니 나에게 건넨 노란색 응원봉을 흔들며 친구들의 연극을 즐기고 있었다.
 
아이 반 공연은 마지막 순서였다. 분주하게 무대 뒤에서 아이들이 자기 역할로 옮겨지고 있었다. 무대 커튼이 올라가니 아이들이 각자 아이돌 역할 이름을 붙이고 아이돌 연습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연극의 내용은 아이돌 연습생 3팀이 경합해서 마지막으로 데뷔할 1팀을 가려내는 이야기이다.

몸치인 우리 아이가 아이돌 안무 동영상을 보며 연습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정말 골반이 안 움직였었는데 연습의 힘은 대단하다는 걸 느낀 게 한 달 반 틈틈이 연습하더니 확연히 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처음엔 아이가 긴장을 한 듯 보였으나 어느새 자기 역할에 몰두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연극이 끝났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끝으로 오늘의 행사는 마무리 되었다. 내가  아이를 찾아가려는 순간 사람들의 손에 들린 꽃다발이 눈에 들어왔다. 급하게 오느라 꽃다발을 준비하지 못했다. 아니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난 항상 학교 행사에 꽃다발을 준비하는 데 오늘은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빈손으로 아이의 옆으로 다가갔다. 아이는 나를 발견하곤 표정이 굳었고 반가워하는 기색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연극이 마음대로 안 돼서 속상해서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못해도 괜찮다고 나는 널 보러 온 거지 못해도 괜찮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게 나의 큰 실수였다. 아이는 뭔가 화가 난 듯 보였다.

주위에서는 공연하느라 수고한 아이에게 다들 귀여운 꽃다발을 주며 축하하고 사진도 찍어주고 있었다. 공연도 마치고 고생했으니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고 해도 아이는 집으로 가고 싶다는 말만 되뇌였다. 그렇게 집으로 가려는 데 친구가 작은 꽃다발을 하나 주고 갔다. 내가 준비 못한 꽃다발을 친구가 주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각자 방으로 들어갔고 몇 시간 동안 각자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난 오늘 공연 동영상도 같이 보며 이야기도 나누고 격려도 해주고 싶었는데 혼자 있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 잘 시간이 되어서도 마음이 풀리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 잠자리에 누워서 말을 걸어보았다. 오늘 혹시 연극이 마음에 안들어서인지 엄마가 꽃다발을 준비안해서 인지 속상한 게 뭔지 알려줄 수 있는지 물었다. 몇 분 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울먹이며 속상한 마음을 쏟아붓듯이 얘기했다.

6시에 거의 부모님들이 다들 오셔서 앉아 있었고 우리가 준비한 응원봉을 달려가 하나 나누어 주는 데 난 아무리 찾아도 엄마가 안 보여서 안 온 건가 하고 쓸쓸히 내 자리에 앉았어. 나도 친구들처럼 엄마 찾아서 달려가서 노란색 응원봉 나눠주고 응원 잘하라고 말해주고 싶었어. 그런 기쁨을 난 못 가셔서 얼마나 실망한 줄 알아?

그리고 친구들은 끝나고 다 귀여운 꽃다발 받았는데 난 엄마가 빈손으로 와서 그것도 속상했어. 한 달 반 동안 열심히 준비했고 오늘 하루 종일 학교에서 연습하고 공연한 건데 축하받지 못한 것 같아 눈물이 났어. 그러려면 왜 온건지 몰겠어.

또 한 가지 가장 내가 마음이 상처 받았던 게 난 내 연기가 맘에 들었고 잘했다고 칭찬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나 보자마자 못해도 괜찮다고 했잖아. 내가 못 했다고 한 적 없는데 엄마가 그렇게 말하니깐 내가 정말 못한 것 같아 얼마나 슬펐는지는 알아. 하여튼 난 오늘 정말 마음이 엉망이야."

아이의 말이 끝나는 순간 아이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며 미안한 마음이 확 올라왔다. 내가 어떻게 이 상황을 만회할 지 머리를 아무리 굴려도 답이 안 나왔다. 그래서 아이에게 일단 엄마가 너의 그런 마음을 몰라서 미안하고 엄마도 사정이 있었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일찍 오고 꽃다발도 준비하고 잘했다고 칭찬도 해주어야 하는데 못 해줘서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꼭 안아주었다. 
 
아이가 연극 중에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냐고 물었다. 연극도 좋았지만 난 아이의 반 앤딩 인사할 때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인사였지만 번갈아 가며 아이들이 앉고 서고 하는 모습이 다른 반이랑 좀 달라 좋았다고 했다. 아이는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 내가 아이디어 낸 거야. 좀 멋졌지. 잘했지? 그냥 손잡고 인사하는 거 보다 포인트 있게 하면 좋을 거 같아서 아이디어 냈는데 아이들이 좋다고 해서 하게 됐어. 오! 엄마 센스있게 잘 봤나보네."

정말 다행이었다. 아이의 기분이 좀 나아진 듯 해냈다. 이 얘기를 시작으로 오늘 다른 반 연극이며 연극 준비한 친구들 얘기를 하며 어색했던 사이가 좀 부드러워진 느낌이었다. 아이가 잠들고 오늘 있었던 일들과 아이가 한 말들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아이가 진짜 원한 건 꽃다발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에 대한 응원과 격려, 칭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