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가 아닌 새로운 기회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데 아이가 슬며시 다가왔다. “엄마 나 수영 안 가면 안 될까? 너무 힘들어. 그만 다니고 싶어.” 진지한 눈빛이었다. 아이가 수영을 배운 지 이제 1년 정도 되어 간다. 처음 수영을 배우게 된 계기가 가족끼리 여행을 가도 다른 조카들은 수영할 줄 알아서 물에서 자유롭게 놀고 하는 데 우리 아이만 수영을 안 배워 물에서 재밌게 놀지 못하는 게 너무 안쓰러워서였다.
지금은 자유형, 배영, 평형을 익혔고 접영을 배우는 중이다. 접영을 배우면서 아이가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았다. 아무래도 접영이 에너지 소모도 상당하고 수영의 꽃이라 불리는 만큼 성인도 어려워하는 유형이다. 아이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접영은 익히는 게 너무 어렵다고 했다. 지난달에 접영이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그만 다니고 싶다고 했지만 선생님과 상담을 통해서 다시 진도를 천천히 나가며 해나가기로 했다. 이때까지 배워 오던 게 너무 아까워서 이 고비를 어떻게든 뛰어넘고 싶었다. 근데 그건 나의 생각 아니 바램이었다.
나의 설득이 계속되자 아이가 울면서 말했다.
“엄마, 자유형 할 때부터 어려웠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노력해서 뛰어넘었어. 평형에도 고비가 있었지만 꾹 참고 해냈어. 하지만 접영에 들어갔을 때 아무리 노력해도 넘지 못하는 뭔가가 있었어. 도저히 내가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수영 자체가 나랑 맞지 않는 거 같아. 물놀이할 정도는 되니깐 수영은 여기까지 하고 싶어.
접영을 못하고 여기서 수영을 관둬도 나는 후회하지 않아. 덜 배운 만큼 물놀이가도 덜 재밌겠지만 내가 다 감수하겠어. 하여튼 지금은 쉬고 싶어. 너무 힘들고 힘들어서 지쳤어. 번아웃이 온 거 같아. 나에게 시간을 좀 줬으면 좋겠어. 정말 수영은 가고 싶지 않아."
아이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아이는 눈물을 닦으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종이 한 장을 나에게 주고는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자기 생각을 적은 종이였다. 내용을 읽는 순간 아이의 마음이 확 와닿았다. 사실 아이가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 가지를 하면 꾸준히 하는 아이라 아이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공감이 갔다. 수영을 끊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수영을 그만두는 건 중요한 일인 것 같아 신랑에게 상의해야 할 거 같아 전화를 걸었다.
아이의 생각을 얘기하고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자신도 수영의 접영에서 진짜 힘들었다고 어른들도 접영을 배우다 포기하는 경우가 제일 많다고 했다. 아이가 힘들어하는 거 당연하고 수용해줘야 하고 수영 자체가 싫다고 말한 건 아이 본인은 잘 모르지만 사실 어려워서 포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수영을 배우지 않으면 평생 배울 기회가 없어서 꼭 접영의 위기를 넘기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다니는 수영장은 그만두고 시간이 조금 지난 뒤 아이가 마음을 회복하면 다른 강습을 받는다든지 포기가 아닌 새로운 기회를 제시해 주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고 했다. 그 말을 듣다 보니 묘하게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아이의 마음이 너무 간절하고 쉬기를 원하니 당분간 휴식하기로 결정했다.
아이 방에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아직도 훌쩍 울고 있었다. 너의 마음을 적은 편지 잘 읽었고 너의 의사를 존중해서 학원은 끊기로 했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나를 꼭 안아주며 정말 수요일이 너무 힘들었다고 이제 수요일이 안 힘든 날이 돼서 기쁘다고 했다. 수영 그만둬도 물놀이는 좋아해서 아빠랑 수영장 가서 잊어버리지 않게 수영할 거라고 했다. 사실 다른 강습 얘기를 하려다 지금은 때가 아닌 거 같아 그냥 꼭 안아주기만 했다.
그리고 이번처럼 네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터놓고 얘기하면 어떤 식으로든 방법을 찾아낼 수 했으니 앞으로도 어떤 일이든 정말 힘들거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땐 언제든 엄마 아빠에게 꼭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아이가 사춘기로 접어들며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을까 걱정이 많이 되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아이가 자기 생각을 글이든 말이든 표현해 주어서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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