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콜로라도 여행
여긴 꼭 가야 해.
에필로그
덴버공항에 처음 내린 날이 기억난다. 덴버 공항이 그렇게 클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하마터면 출구를 못 찾을 뻔했다. 우리가 봤던 공항 스케일이 아니었다. 넓어도 너무 넓었다.
그 속에 수많은 사람 중 하나가 우리였다. 다행히 차량을 가지고 미리 덴버에 와 있던 신랑이 우리를 데리러 와서 공항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배가 너무 고파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한국인이 덴버에 오면 진흥각이라는 중국집에 많이 가는데 우린 백종원의 홍콩반점을 선택했다. 진흥각 다녀온 사람들의 리뷰가 호불호가 갈려서 모험보다는 안전한 백종원의 홍콩반점에 갔다. 결론은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
짜장면, 탕수육, 짬뽕, 볶음밥 종류별로 시켰다. 너무 배가 고파 흡입했다. 먼저 주는 단무지부터 맛있었다. 짜장면은 백종원 특유의 단맛이 있었지만 미국에서 짜장면은 그냥 맛있었다. 짬뽕은 아주 칼칼해서 속이 시원했고 볶음밥도 양도 많고 내 입맛에는 맞았다. 탕수육은 말할 필요가 없다. 맛나다.
가격은 싼 편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식사하면서 k-pop 노래를 들으며 시원한 곳에서 중국 음식을 만나는 일은 여행의 시작에 아주 적합했다.
콜로라도 여행에서
꼭 가봐야 할 곳
# 첫째 날
1. 레드록스 원형극장(Red Rocks Amphitheatre)
레드록스 원형극장은 우리 숙소 오로라 지역에서 차량 40분 떨어진 모리슨 근처에 위치한 야외 원형극장이다. 덴버에 오면 사람들이 꼭 들리는 곳이다. 인공이 아닌 자연이 만들어낸 원형 극장에서 공연을 즐길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곳의 주차장은 upper parking lot과 lower parking lot이 있었다. 우린 주차 자리를 찾다 잘 몰라서 텅 비어 있는 lower parking lot에 주차하고 계단을 올라 극장 쪽으로 향했다.
가다 보니 차량이 엄청나게 주차된 upper parking lot이 있었다. 다들 여기에 주차해 아래가 텅 비어 있었다. 여기에 온다면 주차는 upper parking lot에 하길 바란다.
주차장에선 Friends of red rock이라고 적힌 천막 아래 자원봉사자들이 빵과 도넛, 커피를 나눠주고 있었다. 우리도 도넛 하나를 먹으면서 자원봉사자의 덴버 여행 시 도움 되는 설명을 들었다.
그분 말이 덴버가 많이 건조해 물을 충분히 마셔주고 고도가 높아 탄수화물도 충분히 섭취해 주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옆에 보니 쓰레기 줍는 집게를 하나씩 들고 주변 쓰레기도 정리하고 있었다.
발걸음을 옮겨 극장 입구로 들어가니 또 다른 세상이 열려 있었다. 자연이 빚어낸 예술의 붉은 바위 절벽, 탁 트인 하늘과 맞닿은 길게 늘어뜨려진 좌석, 한창 공연 준비 중인 화려한 무대, 정말 다른 세상에 온 느낌이었다.
오늘은 저녁에 공연이 있어 오후엔 일반관광객에게 극장 안 개방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오전으로 일정을 잡았다. 만약 원형극장 안에 들어가고 싶다면 오전에 방문하든 저녁에 공연이 없는 날로 일정을 잡기 바란다.
와! 여기서 사진을 찍으면 작품이 된다. 자연과 음악, 그걸 즐길 줄 아는 멋진 사람들이 어우러져 영화의 한 장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무대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니 음향이 장난 아니었다.
귀가 째질 듯 울려 퍼지는 음향을 들을 수 있었는데 저녁 공연이 얼마나 멋질지 상상이 갔다. 여기에서 저녁에 공연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우린 한동안 자리에 앉아 그림 같은 자연 풍경을 만끽하며 신나게 울려 퍼지는 음악에 취했다. 매일 이런 자연과 음악을 선물 받은 덴버 사람들이 부러웠다.
날씨마저 사계절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로 가득했다. 다음에 덴버에 온다면 꼭 저녁에 공연을 느껴보고 싶다. 정말 기대 이상의 장소였다.
2. 신들의 정원(Garden of the Gods)
우린 레드록스원형극장에서 차량으로 1시간 40분 거리인 스프링스 지역에 위치한 신들의 정원으로 향했다.
구글맵에 비지터센터를 찍고 가면 된다. 비지터 센터 앞에 주차장이 있어 한 바퀴 두 바퀴 돌다 자리가 나면 주차하면 된다. 어디 가든 여행지는 주차 전쟁이다. 신들의 정원에선 구글 검색이나 맵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미리 구글맵 오프라인 지도를 다운로드해 오는 걸 잊지 말자.
2층 안내소에 올라가면 야외에 포토 존이 있다. 여기서 꼭 사진 한 장은 남기고 가길 바란다. 위에서 보는 전경이 아주 멋지다. 우린 지도를 챙기고 셔틀 정보도 얻고 1층으로 내려왔다.
우린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볼지 셔틀 타고 내려서 볼지 고민하다 포인트마다 주차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셔틀을 타고 이동해 구경하고 오기로 결정했다.
마침 셔틀이 비지터센터 앞에 서 있어서 바로 탈 수 있었다. 기사분이 셔틀 간격이 10분 정도라고 했고 5시 30분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셔틀은 작은 버스라 많은 인원을 태우진 못했다.
셔틀에서 내려서 사람들을 따라 걷다 보면 돌들이 나온다. 이게 정말 자연적으로 생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신기한 돌들이 계속 나왔다.
돌 구경을 하며 걷다 보면 사람들이 커다란 돌 위에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도 덩달아 올라가 보기로 했다. 바위 위를 조심조심 올라가서 보게 된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옆에 앉은 7살 꼬마 아아가 “It’s a beautiful view.”라고 외쳤다. 정말 딱 맞는 표현이었다.
돌아오는 길엔 거리가 멀지 않아 셔틀을 타지 않고 걸어왔다. 길이 참 잘 되어 있어 걷는 게 즐거웠다. 이름이 왜 신들의 정원인지 알 것만 같았다.
비지터센터에 다 닿았을 때 신들의 정원 간판이 보였다. 이를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찍고 일정을 마무리했다. 덴버는 볼거리가 많아 하루에 한 곳 내지 두 곳을 돌아보면 딱 적당한 일정인 것 같았다.
# 둘째 날
3. 파이크스 피크(Pikes Peak)
아침 일찍 파이스피크 정상에 가보기 위해 그 유명한 빨간 모노레일을 예약하고 왔다. 출발시간이 10시 40분이어서 느긋하게 숙소에서 가려고 했더니 갑자기 그날 축제가 있어 주차가 혼잡할 수 있다고 셔틀을 이용하라고 연락이 왔다.
주차하고 셔틀을 겨우 타고 기차 타는 곳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셔틀을 기다리고 셔틀로 이동하는 시간이 꽤 걸려서 하마터면 예매 기간을 놓칠뻔했다. 처음 마주한 빨간 기차가 아주 멋지고 인상 깊었다.
10시 40분 기차였는데 산 정상에 도착하니 12시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30분. 12시 30분까지 자기가 탔던 그 좌석 그대로 와서 앉아있어야 한다고 방송했다. 40분에 출발하는데 1분이라도 늦으면 산 정상에 평생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기차에 내리니 환상적인 뷰가 펼쳐졌다. 밑에는 여름이 다가오고 있는데 여기 산 정상은 눈으로 뒤덮인 한겨울이었다. 경치가 너무 아름다웠다. 더 오래 눈에 담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해 기념품 가게에서 예쁜 병따개 하나만 사서 바로 기차에 탔다.
내려오는 기차에서 졸음이 쏟아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고산병이 약하게 온 것이었다. 머리도 깨질 듯 아파졌다. 물도 마시고 탄수화물도 먹고 산소통도 사서 마시고 했지만 이 허약 체질은 표가 난다. 산에서 내려오고도 두통은 가시질 않았다. 하루 이틀 정도까지 두통은 지속되었다.
경치는 너무 아름답고 기차 타는 것도 신나고 좋았지만 머리가 너무 아파 이틀 정도는 고통스러웠다. 아침에 탔던 열차 입구에 도착하니 거의 2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다시 셔틀을 타고 주차장에 다시 돌아왔다. 다음날 로키마운틴 트레일을 위해 우린 에스테르파크로 향했다.
에스테르 파크 가기 전 오로라에서 유명한 맛집 무봉리순대국 집에서 순대국밥 한 그릇 먹고 기운을 차렸다. 바로 옆 H 마트에서 소화도 시킬 겸 햇반이랑 라면 등 장을 보고 에스테르 파크에 있는 숙소로 이동했다.
# 셋째 날
4. 로키 마운틴 국립공원(Rocky Mountain National Park)
아침 일찍 트레일릿지로드를 갈 예정이었으나 5월 말이라 아직 로키 정상 쪽 날씨가 좋지 않아 트레일 릿지 로드가 폐쇄되었다고 공지가 되어있었다. 알파인 비지터센터에 갈 수 없게 되었다. 대신 내일 가기로 한 베어레이크에서 에매랄드 레이크 트레일을 하기로 했다.
로키마운틴 로드와 베어레이크에 출입하려면 Timed Entry permit을 예약하고 가야 한다. 올해는 5월 1일 사이트가 열리는 예약사이트에서 예약을 이틀 치를 해놓아서 출입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우린 아직 눈이 많이 남아있는 베어레이크 트레일에 대비해 경량 패딩을 입고 등산스틱도 준비해 트레일 길에 올랐다.
베어레이크 트레일 입구에 주차장이 있어 주차하고 이동했다. 우리도 겨우 주차 자리가 나서 주차할 수 있었다. 만약 주차 자리가 없다면 무료 셔틀을 타고 와야 해서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맑은 호수에 비친 베어레이크를 기대했는데 아직 눈이 쌓이고 호수 그대로 얼어 있었다. 얼음호수는 나름대로 운치가 있고 예뻤다. 베어레이크를 지나 처음 만나는 호수인 림프 호수는 작지만 사랑스러웠다.
우리의 목적지 에매랄드레이크 가기 전 드림 호수를 만났는데 왜 이름이 드림인 줄 알 것 같았다. 호수를 보고 있자니 내가 꿈꾸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에메랄드 호수까지 가는 길은 좀 험난했다. 다시 돌아가야 하나 싶을 정도로 힘든 언덕을 넘어섰을 때 사람들의 감탄 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강행군이었다.
힘들게 눈밭을 헤치고 추위를 이기며 온 보람이 있었다. 태어나 이런 멋진 장관은 처음이었다. 한참을 감탄하며 호수를 바라보았다. 경치에 취해 시간 감각이 없었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다시 저 길을 가야 해서 막막했지만 웬걸 가는 길은 쉬웠고 발걸음도 가벼웠다. 아마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걸리는지 짐작할 수 있어 괜찮았던 것 같다.
눈 쌓인 비탈길을 가야 하고 미끄러지기도 하고 고되었지만 정말 최고의 경치를 만날 수 있어 꼭 한번 트레일을 해보길 추천하고 싶다.
5월 말처럼 눈이 많이 쌓일 때 방문한다면 꼭 등산스틱이나 아이젠을 챙기자. 우린 걸음도 느리고 경치 구경하느라 왕복 3시간 30분은 걸린 것 같았다.
당 충전 간식과 물을 꼭 챙겨가야 지치지 않게 다녀올 수 있다. 트레일은 고되었지만 그곳에서 찍은 사진은 그냥 인생샷이 되었다.
트레일을 마치고 비지터센터에서 알려준 계단폭포를 만나러 갔다. 시원하게 내려오는 폭포 근처에 돌 위에서 좀 쉬다 차를 타고 릴리 호수에 다다랐다.
릴리호수는 이름처럼 무척 아름다웠다. 물이 맑아 산이 그대로 비치는 거울 같은 곳이었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머물면서 예쁜 산책길을 따라 걸어봐도 좋을듯했다. 현지인들이 많이들 오는 것 같았다.
# 넷째 날
5. 글랜우드 핫 스프링스 랏지(Glenwood Hot Springs Lodge)
로키마운틴을 뒤로 한채 4시간을 달려 우리의 숙소인 글랜우드 핫 스프링스 랏지에 도착했다. 워낙 유명한 온천풀이라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온천 풀로 향했다.
온천 풀은 랏지 바로 앞에 있었고 입장할 때 룸 번호를 알려두면 수건을 받고 들어갈 수 있다. 락커와 샤워실은 2층에 있어서 독립적이었다. 짐을 정리하고 1층 야외 온천풀로 들어섰다.
온천 풀을 보는 순간 입이 딱 벌어졌다. 규모에 놀라고 주위 뷰에 한번 더 놀란다. 가족끼리 수영을 즐기고 어르신들은 온천 풀에 몸을 담그고 여유롭게 주위 산과 하늘을 바라보며 행복한 모습이었다.
여러 개의 야외 온천 풀은 깊이와 온도가 달랐다. 자신의 취향에 맞게 온천 풀을 옮겨 다니며 즐길 수 있고 수영할 수 있는 레일도 있었다. 다양한 워터 슬라이드를 타는 곳도 있어 아주 다이내믹한 곳이었다. 이곳은 남녀노소의 니즈에 부합하는 곳이란 느낌이 들었다.
이곳의 단점이라면 스낵코너 메뉴가 조금 부실하고 가격이 사악 그 자체였다. 그래도 온천을 더 즐기고 싶은 우리는 기꺼이 배만 채운다는 생각으로 햄버거를 사 먹었다. 하지만 가격 대비 음식 질이 너무 떨어졌다.
이곳은 낮은 낮대로 자연과 함께 온천을 즐길 수 있고 밤은 밤대로 아름다운 조명 아래 온천을 할 수 있어 정말 콜로라도에 온다면 필수코스인 것 같다.
밤에 맨 위쪽 온천풀 가장자리에서 바라보는 온천 풀의 뷰는 정말 미쳤다. 여기 매일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도 좋아 여행 피로가 싹 풀렸다. 하루를 묵고 가기엔 너무 아쉬웠다.
# 다섯째 날
6. 콜로라도 내셔널 모누먼트(Colorado National Monument)
유타주로 넘어가기 전 우린 콜로라도의 마지막 일정인 콜로라도 내셔널 모누먼트로 이동했다. 사실 이름도 생소했고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별 기대 없이 간 곳이었다. 그런데 내셔널모뉴먼트의 뷰를 마주한 순간 내 마음은 돌변했다. 경치에 취해 할 말을 잃었다.
비포장도로를 한참 올라와서인지 하늘과 맞닿아 있듯 구름이 손에 잡힐 듯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착각이 들었다. 우린 중요 뷰 포인트에 주차하고 사진을 찍으며 이동했다.
먼저 도착한 곳은 그랜드 뷰 포인트였다. 포인트에 주차를 하고 뷰를 보니 이름이 왜 그랜드 뷰인지 알 것 같았다. 직접 눈으로 보면 느끼게 된다.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이 거대한 느낌을 말이다.
다음은 COKE OVENS OVERLOOK 포인트이다.
마지막 뷰 포인트는 Devils Kitchen 포인트였다. 여기가 진짜 하이라이트였다. 다른 포인트는 차에 내려서 바로 보면 되었지만 이 포인트는 Devil’s Kitchen Trailhead에 차를 주차하고 도보로 15분 정도 더 가야 만날 수 있었다.
처음엔 날이 너무 더워져 갈까 말까 망설이다 갔었다. 실제로 가는 길에 그늘이 하나도 없어 덥긴 더웠다. 물을 충분히 챙겨간 게 다행이었다.
그런데 도착해서 콜로라도 국립 기념물의 아름다운 암석을 보는 순간 걸어오면서 느꼈던 더위와 힘듦을 다 잊을 수 있었다. 아이도 암석 위에 올라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신기한 듯 암석 표면을 만지작거렸다.
이 트레일 길은 정말 짧지만 멋지고 편안해서 더위 대책만 세운다면 아이와 함께 하기 딱 좋은 트레일이었다.
우린 레드록스 원형극장에서 시작해 콜로라도 내셔널 모누먼트를 끝으로 5박 6일의 콜로라도 여행을 마쳤다. 여행 동안 내가 만난 콜로라도는 한마디로 따스함과 차가움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눈이 쌓인 차가운 로키산맥 아래 따스함이 느껴지는 돌들과 온천이 조화를 이루는 이 아름다운 곳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다음엔 눈이 쌓여있지 않은 베어레이크를 만나러 꼭 다시 한번 오고 싶은 게 내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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