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여행 시
이것만은 꼭 챙기자.
미국 서부 여행을 준비하며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차량의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꼭 필요한 것들만 챙겨서 가고 현지에서 사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런데 현실은 최소한의 물건만 챙겼는데도 차량은 포화상태였다.
처음부터 옷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식자재는 현지에서 구매가 다 가능하다는 것, 숙소에 샤워헤드기가 일체형이라 샤워해드기와 필터를 챙겨가지 않아도 된다 등의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짐이 훨씬 줄고 편하게 다녀왔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 서부 여행을 하며 이건 진짜 잘 가져왔다고 느꼈던 10가지 물품을 한번 적어보았다. 정말 없었으면 큰일 날뻔한 효자템들이다.
1. 라면 포터기
미국 서부 여행 시 호텔 대부분에 물 끓이는 포터기가 없었다. 그래서 우린 라면 포터기를 가지고 갔다. 거기다 물을 끓여서 컵라면에 부어서 먹고 햇반도 데워먹고 봉지 라면도 끓여 먹었다. 정말 이번 여행 중 가장 효자템이었다. 나중엔 참치김치찌개도 끓여 먹고 밀키트 떡볶이도 사서 해 먹었다.
우린 차를 가지고 로드 트립을 해서 접이식 라면포터기가 아닌 보통 라면 포터기를 가지고 갔다. 간단한 여행을 할 때는 접이식 포터기도 가지고 가는 분들을 많이 봤다. 그런데 접이식은 세척하기 불편해서 짐 부피에 부담이 없다면 그냥 라면 포터기를 가져가길 추천한다.
2. 저렴한 실내 슬리퍼
한국에 호텔에는 일회용 슬리퍼가 항상 있어서 유용했다. 하지만 미국엔 일회용 슬리퍼가 잘 없다. 더욱이 서부여행 호텔에선 일회용 슬리퍼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처음엔 미국 도시 여행할 때 일회용 슬리퍼를 사서 가지고 다녔다.
단기여행일 땐 일회용 슬리퍼를 몇 개만 챙겨가면 되지만 장기 여행 시는 짐이 될 뿐 아니라 매일 하나씩 신으려면 비용도 꽤 든다. 그래서 이번 서부여행 때는 아마존에서 싼 슬리퍼를 사서 챙겨가서 신었다. 아주 편하고 좋았다. 이번 여행 필수템이었다.
3. 손톱깎이 세트
여행이 길어지니 머리카락도 자라고 손톱 발톱도 자랐다. 머리카락은 자라면 질끈 묶고 다니면 되지만 손톱 발톱은 자라면 꼭 깎아 줘야 한다. 손톱깎이는 작은 것이지만 안 가져가면 아주 불편하다. 꼭 챙겨가야 하는 물건들 중 하나였다.
4. 나무젓가락
서부여행을 하다 보면 국립공원 일정이 많은데 국립공원은 보고 트레일 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 점심을 차에서 해결해야 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 나무젓가락이 유용했다.
집에서 숟가락 젓가락 세트를 챙겨 갔지만 낮에 쓰게 되면 씻을 때도 없고 불편했다. 그럴 때 유용한 게 나무젓가락이었다. 나무젓가락은 쓰고 그냥 버리면 되니 편했다. 이게 여행하다 사기가 좀 어려운 물건이다 보니 여행 올 때 더 많이 챙겨 올 걸 후회되었다.
5. 보습 용품(수분크림, 미스트, 마스크팩)
미국 서부 국립공원을 여행하다 보면 쩍쩍 갈라지고 터덜터덜하면서 건조한 피부, 얼굴이랑 팔에 하얗게 일어나는 각질을 마주하게 된다. 현지인이 이런 우리 피부를 보더니 지역이 건조해서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미리 챙겨 온 수분크림을 저녁에 듬뿍 바르고 중간중간 미스트도 뿌려주니 한결 나아졌다. 난 마스크팩도 챙겨 와서 저녁에 했다.
집에서도 하지 않던 피부 관리를 여행 와서 하게 되었다. 서부 여행을 하다 보면 느끼겠지만 보습은 내 피부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내가 사랑해 준 만큼 여행을 마치고 만나는 내 피부의 상태가 결정된다.
6. 아이젠과 등산스틱
로키마운틴국립공원에 갔을 때가 5월 말이었는데 베어 레이크에서 에메랄드 레이크까지 트레일을 하는데 아직 눈이 많이 쌓여 너무 미끄럽고 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정말 챙겨간 등산스틱이 없었다면 초입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을 것이다.
한편 트레일 하는 미국인들을 자세히 보니 신발에 아이젠을 끼우고 훨훨 날아다니고 있었다. 등산스틱도 유용했지만 아이젠이 더 편해 보였다. 부피도 크지 않아 5월 말 로키마운틴국립공원 트레일을 계획 중이라면 아이젠과 등산스틱을 꼭 챙기기 바란다. 다른 국립공원 트레일 할 때도 등산스틱은 아주 유용했다. 특히 자이언 캐년 국립공원 narrows 물길을 걸을 예정이라면 무조건 챙겨야 한다. 물살도 세고 돌도 미끄러워 꼭 등산스틱이 필요했다.
7. 세탁용품(빨래 집게, 일회용 종이 세제, 그물망)은 기본 / 쿼터
세탁용품은 장기 여행의 필수품이다. 아무래도 여름에 여행하다 보니 옷을 자주 갈아입게 되어 빨래를 자주 하게 된다. 빨래할 때 넣을 일회용 종이 세제, 스포츠웨어는 건조기를 사용하면 안 되니 빨래집게 줄도 준비해 가자. 대부분 숙소에 세탁시설이 있어 옷을 빨아서 입으면 돼서 편리했다.
이때 기억해야 할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꼭 쿼터를 넉넉히 준비해 가자. 세탁기를 한 번 돌리는 데 숙소마다 2달러~3.5달러가 필요한데 모두 쿼터로만 작동할 수 있었다. 2달러에 쿼터 8개가 소요되니 여행 날짜와 세탁 횟수에 따라 쿼터를 교환해 가면 된다. 세탁하는 기계와 건조 기계가 따로 있어 각각 쿼터가 필요하다.
물론 숙소에서 세탁한다고 얘기하면 쿼터를 바꿔주는 데도 있었고 세탁실에 잔돈 바꾸는 기계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편하게 세탁하려고 하니 쿼터를 준비해서 휘리릭 하고 오는 게 편했다. 쿼터는 무조건 넉넉히 은행에서 미리 바꿔가길 추천한다. 남은 쿼터는 대도시 여행 시 거리 주차할 때도 사용해도 되니 넉넉하게 준비하는 게 옳다.
8. 필기도구
의외로 여행 중 필기도구를 쓸 일이 많았다. 여행 일정을 지도에 표시하고 간단한 메모할 때도 필요했다. 볼펜, 샤프, 테이프, 가위가 유용했다. 가위는 비행기를 탈 때 기내 반입금지품이다. 우린 차량 여행이라 가위를 가지고 가는데 제약이 없었다.
9. 햇빛 차단 제품(선글라스, 모자, 선크림, 팔토시)
미국 햇빛은 한국 햇빛과 다르다. 아주 강력하고 따갑다. 특히 미국 서부지역 햇빛은 용광로같이 뜨겁다. 펄펄 끓는 라스베이거스는 낮에 5분도 서 있기 힘들었다. 나의 피부를 보호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햇빛에 나의 피부를 노출하지 않는 것이다. 모자를 쓰고 팔토시 끼고 선글라스 착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무조건 선크림은 sp 50 이상 발라야 한다. 수시로 선크림을 뿌리고 발라줘야 한다. 내가 부지런한 만큼 나의 피부는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10. 아이스박스
미국 서부 로드트립을 한다면 챙겨가야 할 필수템이다. 집에 50리터 아이스박스가 있었지만 차 트렁크에 넣고 다녀야 하고 숙소에 옮기기 불편해 이동하기 쉬운 28리터 크기를 다시 구매해서 가져갔다.
숙소마다 아이스 머신이 있어 숙소 체크아웃하기 전에 얼음을 채우고 다녔다. 여행 동안 숙소엔 대부분 냉동실이 없어서 더운 미국 서부 여행 시 아이스박스는 필수였다. 국립공원을 여행하다 보면 차에서 점심을 해결해야 할 때가 많다. 그때 한인 마트에서 산 김치, 과일, 음료수를 시원하게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아이였다.
# 개인적으로 콜로라도 파이크스 피크 정상에서 사용한 미니 산소통이 유용했다. 나 혼자 산 정상에서 고산병이 약간 왔었다. 미리 챙겨간 미니 산소통의 산소를 조금씩 마셨다. 다른 가족은 다 괜찮았고 나만 산소가 부족한지 두통에 시달렸다. 고산병에 대비한다고 미리 아마존으로 구매해 간 미니 산소통이 다른 사람에겐 몰라도 나에겐 진짜 고마운 아이템이었다.
# 긴 여행을 하다 보면 아프거나 다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상비약은 필수다. 우린 선인장 가시에 찔려 상처가 났었는데 그땐 후시딘이 최고였고, 피부에 문제가 있을 땐 한국에서 처방해 온 리도멕스를 발랐더니 다 가라앉았다.
우린 아이가 있어 해열제, 기침감기약, 소화제, 알레르기제, 파스 등 약은 종류별로 다 챙겨갔었다. 결과적으론 후시딘과 리도멕스 빼고는 거의 사용 안 했지만 상비약은 쓰든 안 쓰든 꼭 챙겨가야 하는 안심 보험 같은 것이었다.
# 지퍼백, 비닐백을 진짜 많이 챙겨갔었는데 정말 유용했다. 여행이 길다 보니 이것저것 담을 게 많았다. 아이스박스에 얼음을 담을 때도 필요했고 청포도 같은 과일을 차에서 먹을 때도 꼭 있어야 했다. 여하튼 많이 챙겨가도 거의 다 쓰고 왔다.
더불어 일회용 접시도 많이 가져가서 유용하게 사용했다. 국립공원을 돌다가 차를 세우고 식사 해결할 때 씻어서 쓰는 그릇들을 쓰기에는 불편해 일회용 접시에 밥이랑 반찬을 담아서 먹곤 했다. 코스트코에서 한 묶음을 사서 갔었는데 거의 다 소진하고 돌아왔다.
굳이 챙겨가지 않아도 되었던 것들
1. 샤워헤드기와 필터
피부가 예민한 편이라 미국 서부 물 상태를 몰라 챙겨갔었는데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다. 우리가 묵은 숙소 샤워해드기가 일체형이 대부분이었고 국립공원을 돌고 피곤함에 절어 숙소에 도착하면 그냥 대충 씻고 자기 바빴다.
2. 햇반, 김, 물 등 식재료
처음 출발할 때 걱정이 돼 차에 물이랑 김이랑 참치통조림 등 차에 한 보따리 싣고 갔었다. 근데 의외로 덴버나 la 등 큰 도시에는 한인 마트가 있어 쉽게 살 수 있었고 여행 중간에 코스트코, 월마트, 샘스클럽 같은 대형 마트가 있어 한꺼번에 며칠 식량을 사서 다녔는데 큰 불편이 없었다.
차라리 가져가려면 튜브형 고추장이라든지 구하기 힘든 간편한 양념을 챙겨가는 게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3. 많은 옷
우린 옷을 엄청나게 챙겨갔었다. 지금 생각하니 최소한의 옷만 챙겨갈 걸 후회되었다. 숙소에 세탁시설이 다 있어 빨아서 입으면 되어서 많은 옷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편해서 입는 옷만 몇 벌 입어서 옷이 생각보다 필요하지 않았다.
많은 양의 옷을 챙기기보다는 서부여행 할 땐 차라리 사계절 옷을 골고루 챙기는 게 낫겠단 생각이 들었다. 5월 말 날씨는 낮엔 찌는 듯 덥고 밤엔 쌀쌀했다. 특히 로키마운틴은 그냥 한겨울이다. 그리고 챙겨가려면 여분의 등산모자랑 쿨토시를 몇 개 더 챙겨가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난 등산모자를 하나만 챙겨가서 여행 내내 썼더니 집에 돌아올 때는 모자에 땀 냄새가 절어 있었다. 모자는 밝은 색상의 것을 추천한다. 사진을 찍었을 때 더 선명하고 예쁘게 나온다.
4. 곰 스프레이
국립공원을 여행할 때 곰을 만날 수 있다고 해서 곰 스프레이를 주문해서 가지고 갔었다. 우린 제너럴 셔먼 트리를 만나러 갔던 세콰이어 국립공원을 지나다 곰 안내 표지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또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지나다가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 보고 있길래 차를 세워 봤더니 먼발치에 새끼 곰이 있었다.
하지만 곰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북적이는 곳에서는 잘 오지 않는다고 했다. 인적이 드문 트레일을 할 때는 가지고 다니면 심적 안심이 될 것 같긴 했다. 우린 국립공원마다 대부분 중요 포인트만 보고 왔기 때문에 곰 스프레이가 필요하지 않았다.
처음엔 차를 가지고 미국 서부 여행하려고 결정했을 때 우리가 과연 갈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되고 정말 힘들면 다시 돌아오려고 마음 먹고 떠났었다. 그런데 여행 전 필요한 것들을 꼼꼼히 챙기고 여정을 구체적으로 세웠더니 고생도 덜하고 여행도 생각보다 꽤 괜찮았다.
내가 직접 여행하면서 너무나 잘 썼던 고마웠던 것들을 적어 보면서 하나의 작은 물건이지만 내가 챙겨가고 안 가고의 차이는 여행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미국 서부 여행을 다녀오면서 두려움이 많았던 난 이젠 잘 준비만 한다면 어디를 여행하든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정말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색다른 경험을 하면서 내가 변해가기도 하고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도 하는 멋진 선물인 것 같다.